중앙은행들은 왜 금을 사는가?
"전 세계 중앙은행들은 달러 리스크와 인플레이션, 지정학적 불안을 회피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금을 매입하고 있다.
이 흐름은 단순한 투자 이상의 의미로, 신화 속 ‘질서의 상징’이었던 금처럼 오늘날에도 금융 안정과 권력의 도구로 활용된다.
개인 투자자들도 금의 상징성과 흐름을 이해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포트폴리오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
황금의 시대와 현대 금융의 신화적 균형 감각
2025년 봄, 세계 금시장은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2024년 한 해 동안 국제 금값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2025년 들어서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흐름의 뒤편에는 우리가 종종 놓치는 존재가 있다. 바로 전 세계 중앙은행들, 이들이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황금을 사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오늘 이 흐름을 신화의 눈으로 다시 들여다보려 한다. 금은 단지 물리적 자산이 아니라 신화 속 질서와 권위의 상징, 그리고 지금 이 시대 금융의 방향을 이끄는 상징적 언어이기 때문이다.
신화는 왜 황금을 중요하게 여겼을까?
고대 신화에서 금은 단순한 부의 상징이 아니었다.
그것은 신성과 질서, 영원성과 권력의 언어였다.
예를 들어, 노르드 신화에서 드워프가 만든 황금 반지 *안드바리의 반지(Andvaranaut)*는 소유한 자에게 무한한 부를 약속하지만, 동시에 탐욕과 파멸의 저주를 안긴다. 반지는 신 오딘, 인간 영웅 지그프리드, 발퀴레 브륀힐데 등 수많은 이들의 손을 거치며 결국 신들의 몰락, 라그나로크로 향하는 길을 열게 된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욕심 부리지 마라”는 교훈에 그치지 않는다. 황금은 신성과 위험을 동시에 품은 이중적 상징이며, 이 균형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세계의 운명조차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신화의 렌즈로 현재의 금융 세계를 들여다보자.
중앙은행들은 지금 이 시대의 ‘신들’처럼 황금을 선택하고 있다. 그들이 선택한 황금은 ‘탐욕의 결과’가 아니라 ‘혼란의 시대를 조율하기 위한 새로운 질서’의 도구다.
중앙은행, 다시 황금을 선택하다
2024년 한 해 동안 전 세계 중앙은행이 사들인 금의 양은 무려 1,200톤 이상에 달한다. 이는 1967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중앙은행의 금 매입량이 이토록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글로벌 금융 위기의 그림자가 다시 떠오르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특히 주목해야 할 나라는 폴란드다. 폴란드 중앙은행은 2023년부터 공격적으로 금을 매입하더니, 2025년 들어서도 추가로 49톤을 더 확보했다. 이는 단순한 보유를 넘어 전략적 자산 전환의 성격이 짙다. 폴란드뿐만 아니라 중국, 러시아, 터키, 인도, 카자흐스탄 등도 금 매입에 적극적인 국가들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달러 의존도를 낮추고, 경제적 주권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금을 활용하고 있다.
이유 1. 세계 질서의 재편 – ‘금’은 중립이다
달러에 대한 의존을 줄이기 위함이다.
현대의 세계 질서는 달러 패권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갈수록 많은 나라들이 그 구조에 피로를 느끼고 있다.
미국이 ‘제재’의 수단으로 달러 금융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달러는 이제 ‘중립 자산’이 아니라 ‘정치 자산’**이 되어버렸다. 이에 따라 각국 중앙은행은 통화 주권을 지키기 위해 ‘중립적 자산’인 금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마치 노르드 신화에서 신들이 자신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반지를 소유했듯, 현대의 중앙은행들도 금을 통해 새로운 균형을 구축하려는 셈이다.
이유 2. 혼돈에 대비하는 ‘불의 방패’
황금은 신화 속에서 ‘불’의 속성을 지닌 경우가 많다.
그리스 신화에서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불 속의 보물, 혹은 인도 신화에서 아그니(불의 신)가 감시하는 황금 사원, 이 모두는 금이 위기 상황에서 질서를 유지하는 수단이자 마법적 보호 장치로 여겨졌다는 걸 보여준다.
현실 세계도 마찬가지다.
전쟁, 무역 갈등,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중앙은행은 금이라는 방패를 통해 경제의 안전지대를 확보하려 한다. 금은 위기 시에 불타지 않는 실물, 그리고 언제나 귀중한 ‘최후의 자산’이다.
또한, 중앙은행들은 통화의 신뢰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예상치 못한 국제 정세의 변화나 금융 시스템 붕괴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금은 **전 세계 어디서든 동일한 가치를 인정받는 ‘신뢰의 자산’**이기 때문에, 위기 상황에서는 그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한다. 실제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경제 제재를 받자, 금 보유고를 바탕으로 위기를 버텼다는 분석도 있다.
이유 3. 인플레이션 시대의 생존 도구
인플레이션은 예고 없이 찾아오며, 종이화폐의 가치를 망가뜨린다.
그리스 신화 속 여신 데메테르가 대지의 비옥함을 거둬들일 때, 인간들은 흉작과 굶주림을 겪는다.
현대의 인플레이션도 비슷하다. 통화 공급이 넘치면, 경제는 더 이상 풍요롭지 않다.
이럴 때 금은 데메테르의 씨앗처럼 희귀하고 생존을 보장하는 자원으로 여겨진다.
이 때문에 중앙은행은 통화가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하고, 그 대안이 바로 황금이다.
한국은행은 왜 금을 사지 않을까?
한국은행은 2013년 이후 단 한 번도 금을 추가로 매입하지 않았다.
현재 보유량은 104.4톤, 세계 38위 수준이다. 한국은행은 “금은 유동성이 낮고 가격이 불안정하며, 보관 비용이 크다”는 이유로 달러 자산, 미국 국채, SDR 등을 선호하고 있다. 즉, 위기 시 빠르게 현금화할 수 없고, 관리 비용이 크다는 것이다.
이러한 판단은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있지만, 지금처럼 세계 질서가 재편되는 시기에선 다소 아쉬운 선택으로 보인다.
황금을 사들이는 이들은 신중한 주술사들처럼 세상을 분석하고, 변화를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금에 담긴 신화적 상징과 현대 금융의 교차점
우리가 신화에서 황금을 읽는 이유는 단지 과거를 추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신화는 오늘날에도 유효한 금융의 은유다.
금은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창조하는 자산이다.
금은 인간의 탐욕과 함께, 생존과 재생을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중앙은행의 금 매입은 단지 경제 수치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글로벌 서사에 대한 참여다.
개인 투자자라면, 어떤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까?
중앙은행의 움직임은 단순한 금 보유량 변화 그 이상이다. 이는 향후 세계 통화 체계의 흐름, 금융 리스크 대응, 그리고 새로운 금융 질서의 방향성을 암시한다. 개인 투자자도 이를 중장기적 전략의 나침반으로 활용할 수 있다.
- 단기 차익보다는 장기 자산 안정화 수단으로 금을 바라보자.
- 실물 금, 금 ETF, 금 관련 주식 등 다양한 수단을 병행하자.
- 중앙은행의 매입 트렌드와 금 시세 변화는 반드시 주기적으로 체크하자.
금은 움직임이 느린 자산이지만,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그 가치를 드러낸다.
금값은 '하루아침에 폭등하지 않지만, 폭락도 드물다'는 말처럼, 안정성과 신뢰가 핵심이다.
황금은 다시 세계를 중심으로 이끌고 있다
신화에서 황금은 늘 신의 권위와 신성한 질서를 상징했다.
현대 금융에서도 금은 다시 한번 **‘질서 재편의 상징물’**이 되고 있다.
단순한 보석, 투자 자산을 넘어, 금은 국가의 전략이자 권력의 표식으로 부상하고 있다.
우리가 개인 투자자로서 이 흐름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단순히 '금값이 오를까?'가 아니라
우리는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묻는 질문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