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예언, 인간의 저항 – 그리고 ‘투표’라는 새로운 힘
고대 비극에서 한국 현대사까지, 선택의 힘을 다시 묻습니다.
고대 신화와 비극은 늘 인간에게 질문을 던져왔습니다.
“당신은 운명을 바꿀 수 있는가?”
신의 예언은 피할 수 없는 결말처럼 들리지만, 그 앞에서 인간은 늘 저항했고, 고통 속에서도 자신의 의지를 증명하려 했습니다.
이처럼 ‘선택’은 신의 몫이 아니라, 그 운명에 맞서는 인간의 권리이자 존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의 정신은 오늘날, 한 장의 투표용지 위에 살아 있습니다.
오이디푸스는 왜 눈을 찔렀는가 – 선택의 존엄
『오이디푸스 왕』에서 델포이 신탁은 예언합니다.
“너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그 예언을 피하려 도망치고, 진실을 마주하자 스스로 눈을 찌르고 추방을 택합니다.
신이 정해둔 결말을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그 안에서 자기 존재의 방식은 끝까지 스스로 결정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운명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 신보다 더 위대해질 수 있다는 신화의 진실입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왜 사슬에 묶였는가 – 저항의 윤리
『프로메테우스의 사슬』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신의 명령을 어기고 인간에게 불을 전해줍니다.
그는 고통받지만, 말합니다.
“인간이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다면, 살아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신에 맞선 그의 결단은, 오늘날 시민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와 맞닿아 있습니다.
투표는 그와 같은 작은 저항의 불씨입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투표는 ‘결과’가 아니라 ‘투쟁’의 산물
1987년 6월, 한국 시민들은 대통령을 직접 뽑게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전두환 정권은 이를 거부하고, 자기 사람을 지명하며 운명을 강요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은 말했습니다.
“호헌 철폐! 독재타도!”
그리고 그 외침은 결국 6·29 선언으로 이어졌고, 대통령 직선제는 시민의 손에 돌아왔습니다.
그 이후 오늘까지 이어진 투표의 권리는, 그저 헌법에 적힌 문장이 아니라 광장의 고통과 희생으로 쟁취한 현실입니다.
그러나 지금, 투표를 모욕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일부 세력은 “사전투표는 조작되었다”, “QR코드에 정당 정보가 숨겨져 있다”는 주장을 퍼뜨려 왔습니다.
전광훈은 신의 이름으로 음모론을 외치고, 황교안과 김문수는 검증되지 않은 ‘부정선거’ 프레임을
자기 정치 생명의 도구처럼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민의힘은 이들과 거리를 두는 척하면서도 그 주장들을 조용히 방치하거나 활용해왔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수준은 신탁도, 예언도 아닌 “내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맹신의 정치”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또 하나의 위험한 선택의 장면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바로 “부정선거”라는 허위 신탁입니다.
2020년 이후 일부 유튜브 채널과 정치세력은 “사전투표가 조작되었다”, “QR코드에 정당 코드가 숨어 있다”는
과학적으로 전혀 검증되지 않은 주장을 퍼뜨려 왔습니다.
이들의 주장은 신화 속 신탁이라기보다는, 논리도 구조도 없는 ‘자기 확신의 주문’에 가깝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 허위 신화를 정치적으로 악용한 인물들입니다.
전광훈은 신의 이름을 빌려 정치를 선동했고, 황교안과 김문수는 음모론을 증폭시키며 존재감을 부활시키려 했습니다.
그리고 국민의힘은 이들과 거리를 두는 척하면서도, 그 프레임을 방치하거나 조용히 이용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리스 비극은 경고합니다.
“신탁을 조작하거나 허위를 믿은 자는,
결국 자신이 만든 거짓 신화에 의해 파멸당한다.”
부정선거라는 망상은 민주주의의 신뢰를 갉아먹습니다.
그리고 그 피해는 결국 투표로 삶을 바꾸고자 했던 사람들, 즉 경제적 약자와 일반 시민에게 돌아갑니다.
고대 신화는 말합니다.
“거짓 신탁을 받아들이고, 진실을 외면한 자는
결국 스스로 만든 거짓에 삼켜진다.”
그리고 결국, 피해자는 ‘한 표에 모든 것을 거는 사람들’
부정선거 음모론이 반복될수록 시민의 신뢰는 무너지고, 투표는 무의미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바로 그 투표야말로 경제적 약자가 가진 유일한 권력의 수단입니다.
누구는 로비로, 누구는 언론으로, 정치를 움직일 수 있지만 우리에게는 단 하나, ‘한 표’가 있습니다.
그 한 표로 우리는 오이디푸스처럼 진실을 마주하고, 프로메테우스처럼 저항하며, 87년 시민처럼 미래를 선택합니다.
신이 아닌 우리가 선택하는 시대
신화는 말합니다.
“운명을 바꾸기는 어렵지만, 그 앞에서 눈을 감지 않는 것이 인간의 힘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투표는 신탁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신보다 먼저 선택하는 인간의 권리이다.”